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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 관한 고찰 김채준 2020.07.02

현대 사회가 자본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명제에는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과 자본주의 이론의 토대를 마련한 뒤 멜서스, 리카도 등이 자유무역론과 노동가치론을 통해 고전파 경제학을 도야(陶冶)하였으며, 마르크스는 19세기 산업 혁명 후 노동자에게 집중하며 잉여가치론 등을 주창하였다. 이는 세기말 왈라스, 마셜 등의 한계주의적 관점과 균형의 경제학으로 명맥이 이어졌고, 20세기 초,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생성하였다. 그러나 현대 경제학의 본질은 1929년 대공황에서부터 비롯된다. 시장은 붕괴되었고, 디스플레이션이 시작되었으며, 실업률이 급증하게 되어 세계 경제는 폭락하였다. 이에 케인즈는 정부의 재정지출, 즉 큰 정부의 실현을 설파하였으며 소비 의욕을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로 정의하여 수정자본주의적 경제학을 주장하였다.

 

케인즈의 이러한 수정자본주의는 정부 주도의 재정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되는 토대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는 대공황을 떨치고 5-60년 대에 다시금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1973 OPEC의 유가 파동으로 인해 또 한번 경제 위기가 찾아온다. 이전까지 필립스 곡선으로 설명이 가능했던 명목 임금 상승률과 실업률에 상충 관계 이론은 인플레이션과 동시에 실업자가 다량으로 발생하게 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무너지게 되며, 수정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다량 지적되며 케인즈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급부상한다. 밀턴 프리드먼은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을 주창하며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공급중시 경제학을 설파하였으며, 자본주의의 최대 시장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에서도 레이건이 이를 기반으로 경제 정책을 주도해 나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도 2008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한계점이 극명하게 드러났으며, 다시 한번 정부 주도의 경제 회생 지출, 즉 양적 완화가 시작되며 ‘유동성의 함정을 주장한 케인즈주의가 회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적 완화가 장기적인 경제활력은 회생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이미 입증된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신자유주의와 네오-케인즈주의의 대립은 주류 경제학의 대표적인 논쟁점이다.

 

현대 세계 경제를 주도해 나가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활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도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케인즈의 주장에 의거하면, 정부 주도 경제 정책은 경제 부흥의 기반이 될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일자리 마련의 기회로 연결되어 전체적인 시장 경제 회복이 가능하다. 또한 총수요가 증대되기에, 이를 지출의 측면으로부터 접근하여 표현한다면, 소비지출(C), 투자지출(I), 정부지출(G), 순수출(NX)의 도합은 Y, 즉 지출접근 방법에 의한 국내총생산(GDP)이 되므로, 자연적으로 경제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은깨진 창문의 역설로 그 한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유리창을 깨면 누군가, 즉 유리창을 수리하는 사람에게는 경제적으로 이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과연 전체적인 시장 경제에 양()적으로 이득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라고 고려해본다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창문이 깨진 것에 대한 손해는 전체적인 시장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이 상황을 확대하여 전쟁에 투사하여 보면 창문을 수리하여 수리공이 통화를 취득하는 행위, 전쟁 특수로 얻은 국가적 이익이 전쟁 정당화 수단이 되는가라는 의문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유리창을 깨는 행위, 즉 전쟁을 일으키는 그 자체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전체적인 시장 경제의 이득은 그보다 훨씬 거대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므로, 대규모 정부 주도 사업을 통한 경기 부양은 이상적이지만, 그 한계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불필요한 정부 산업은 지양하는 것이 올바른 경제 정책이 될 것이다.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와 낙수효과로 대표되는 자유방임주의 또한 향후 경제를 주도해 나가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규제에서 보다 자유롭게 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자유방임적으로 시장의 자연적 회복성에만 의지하는 것은 기업의 거대화와 부의 양극화 문제를 악화시키며, 경제적으로 올바른 발전성을 가질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의 규모가 증대될 수 있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퇴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국가를 주도하는 것은 거대 기업이 아니다. 스티글리츠에 의하면, 낙수 효과는 국가 경제 전체의 표면적 규모를 증대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의 경제 구성원 모두에게 조금씩 이윤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거대 기업이 불평등하게 부를 과도하게 축적하기에 부의 불균형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심화된다. 그렇기에, 기업의 독주를 견제하고 어느 정도 부를 배분하기 위해 자본 계급에 따른 상속세를 징수하거나 30억원 이상의 주식을 물려줄 경우, 상속세율 50%에 주식평가액 할증 기준 30%을 적용하는 등의 정부 정책이 필수적이다.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수치상의 성과와는 별개로 체감되는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어렵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케인즈주의, 신자유주의 이 두가지 시선에서 모두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경제의 가장 큰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의 소비를 독려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국가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궁극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고 그의 부가적인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일정 수준의 재화를 전국민에게 대가없이 지급하여 케인즈주의의 정부 주도적인 경제정책을 시행함과 동시에,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정책을 혼용하여 결과적으로는 시장의 총수요를 증가시킴과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측면에서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면 많은 양의 통화가 시장 내에서 확산되어 경제적으로 활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모든 국민에게 소득이 지급됨으로써 복지 정책으로도 큰 의의를 가진다.

 

우선적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갇혀 있는 중하위 계층을 지원할 수 있고, 형평성의 측면에서도 고세율 납부자의 박탈감을 줄여줄 수 있다. 기본소득을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바라보며 기존 복지의 축소와 양극화의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기존의 복지 정책의 전면 폐지라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하는 것보다 중복 또는 부실하게 편성된 예산을 줄이고 예산의 유연성을 늘리는 관점에서 보면 신자유주의적 시선 또한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는 기본 소득의 재원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건강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재원에 관해서도 합리적 결과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전세계를 집어삼켰고, 인간과 시장 경제가 존재하는 한 인류는 그 누구도 아닌 통화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양날의 칼을 지녔으며, 현대의 급변하는 사회에서 명확한 국가적 인도와 제재가 시행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를 표방한 국가의 내부 시스템은 모두 무너지고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자본을 가장 많이 독식한 이익집단, , ‘기업만이 생존하게 될 것이다. 기업주도적 시장 경제 체제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닌, 자본주의의 선한 측면을 상기시켜 정말 국가의 구성원 모두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돈이 없어 허덕이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것, 더 나아가 상생하여 더 큰 체계적,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는 것, 그것이 바로 궁극적으로 올바른 자본주의 사회라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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